영화 인간중독 리뷰
1. 러닝타임 내내 교육대장 김진평(송승헌 분) 대령의 자욱한 담배연기가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시종일관 불안에 허덕이는 그의 내적 갈등을 대변하는 장치로, 그는 거의 매 씬마다 담배 개피를 꺼내 무는데, 단 한 장면도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 못한다. 남발된 포인트가 밋밋한 선이 되어 김진평을 인간중독이 아닌 니코틴중독자로 만들어 버린다.
2. 경우진(온주완 분) 대위의 포지셔닝에 아쉬움이 있다. 개봉 전 홍보 전면에 섰던 만큼, 비중있는 역할을 기대했는데 중간 중간의 웃음 외에 어떤 이야기의 전개나 갈등도 유발하지 못한다. 차라리 아내 종가흔(임지연 분)의 외도를 알고도 모르는 척 하거나, 이용하려고 했다면 플롯이 너무 장황해졌을까.
3. 교육대의 2인자 최중령 부인(전혜진 분)과 김진평의 아내 이숙진(조여정 분)의 말다툼 장면이 조금은 뜬금없게도, '인간중독'에서의 갈등이 고조고조최고조인 씬이다. 부대 내에서의 계급질서는 관사 內 안사람들에게도 고스란히 전사된다. 물론 아이들까지도.
4. 김진평 대령은 연애편지에나 적힐 문어체 대사를 그대로 토해낸다. 종가흔에 대한 애정을 전혀 숨길 수 없다는 듯이. 연기력의 문제인지, 선뜻 이입을 하기 힘든 연출의 문제인지, 나는 영화 막판 5분 여의 김진평 대령의 절규를 손가락 사이로 눈만 빼꼼히 꺼내놓고 봤다.(5분보다 짧을 수도 있다. 보기 힘든 장면이었다. 오글오글.)
5. 위에 적은 '선뜻 이입을 하기 힘든 연출'에 가장 큰 공헌을 하는 역할이 종가흔이다.
새장 안에 담배연기를 밀어넣는 김진평 대령과의 첫만남부터 스스로 인질로 잡히는 장면, 문안을 온 김진평 대령에게 꽃꽂이를 시키는 모습, 그리고 그 이후까지 종가흔은 내내 종잡을수 없는 인물이다. 어떻게 보면 '인간중독'에서 유일하게 상황에 따라 변화해가는 입체적 캐릭터라고 해도 무방하나, 이 정도면 오락가락이다.
"누가 보면 어때요? 어차피 다 남인데."를 외치던 여자는 영화 말미에 "우리 이러면 안될 것 같아요"라고 애원했다.
6. 김대우 감독이 욕심을 많이 냈다. 한국판 '색,계' 라는 홍보문구가 공공연히 떠 돌 정도로 정사씬에 대한 관심이 높은 영화였다.
올라간 본인의 위상에 걸맞는 연출을 노린 것인지, 노골적이고 말초적인 자극보다 아름다움을 담으려 한 흔적이 보인다. '방자전'의 김주혁, 조여정보다 훌륭한 소스(사견이다. 임지연♡)를 가지고, 지루한 요리를 내 놓으니 좌석에서는 탄식이 절로.
7. 골방에서 노트북으로 봤다면 다섯 개의 별 중에 하나만 채워졌을 지도 모르겠다. '인간중독'은 2시간 내내 위태롭다. 사랑도, 진급도.
거대한 스크린에 뿌려지는 화면은 내내 어두운 분홍 빛이 감돌고, 갈등 상황에서 연타로 뿜어내는 베이스음(둥둥, '죠스'에서의 그것과 비슷한 느낌.)이 보는 이를 긴장케한다. 근본이 결여되서 그렇지, 디테일은 좋았다.